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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핵발전과 생태민주주의'-제 11차 아시아-태평양 NGO 환경회의 기조연설
 문규현  | 2013·11·02 21:54 | HIT : 3,983 | VOTE : 721

제 11차 아시아-태평양 NGO 환경회의 "아시아 탈핵, 후쿠시마에서 시작한다." 오늘 첫날 제가 한 기조연설 일부를 나눕니다.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님께서도 함께 해주셔서 더욱 풍성한 자리 되었습니다.

<핵발전과 생태민주주의>
문규현 / 천주교 신부, (사)생명평화마중물 대표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한 엔지오 활동가 여러분께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의 헌신 덕택에, 아시아 공동체는 생명력을 지탱하고, 비전과... 영혼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 와 계신, 후쿠시마 농민들과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여러분. 여러분께 깊은 위로와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진실의 증언자이며, 희망의 징표입니다. (중략)

저는 먼저,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지역에 대한 재인식과 공감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이곳에는 개발 숭배 속에 사라진 새만금갯벌이 가까이 있습니다. 또 새만금갯벌을 잃고 핵폐기장 유치반대 운동을 치열하게 치른 부안은 1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전남 영광 핵발전 단지와는 불과 90킬로미터 거리입니다. 생태계의 죽음과 고통, 인간의 불안한 삶과 저항정신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는 우리 자신의 생존과 미래를 고뇌하고, 더불어 전북지역에 새로운 비전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치열한 성찰과 전환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이 가져온 시대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이로 인해 인류는 지금 절체절명의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산업화시대에 대한 환상이 다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이 인간의 삶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있다는 환상, 세계경제대국에 대한 환상 따위가 다 날아갔습니다.

핵발전은, 무한성장과 무한소비, 무한편리가 가능하다는 자본주의적 환상, 물신숭배 사회를 뒷받침해 왔습니다. 그러나 체르노빌에 이은 후쿠시마 원전 대재앙은 인간사회가 더 이상은, 핵에너지와 함께 갈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길이 아닌, 두 가지 길 중 오직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역사적 시점에 서 있습니다. 핵발전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이 공포와 죽음의 불덩이를 품에 안고 내 세대만의 일시적 쾌락과 안락에 계속 취해 살 것인가?

생태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 공생과 공명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고, 사회 구성원들이 지닌 권리와 존엄성이 인정되고 존중되는 것입니다. 핵발전과 인간은 공생 가능한가? 핵발전은 여러 존재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보장하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물어야 합니다. 체르노빌의 고통, 후쿠시마의 고통이 결정적으로 답합니다. ‘핵의 평화로운 이용’이란 말은 완전한 허구라고 말입니다.

그곳에 축복받은 대지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곳에 어머니 바다는 더 이상 없습니다.
그곳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멈췄고, 꿈도 사라졌습니다.
그곳에선 어떤 것과도 친밀함을 나눌 수 없습니다.
물도 꽃도 나무도, 모든 것이 위험합니다.

누가 이들의 눈물을 위로하고 있습니까?
누가 이들의 고통을 들어주고 있습니까?
누가 참회하고, 누가 책임지고 있습니까?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희생당하고 있습니까?

대체 무엇이 '핵의 평화로운 이용'입니까? (중략)

핵무기가 국가 간 전쟁의 도구라면, 핵발전은 전력생산과 송출, 전기사용과 핵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한 나라 안에서 갈등과 분열을 유발합니다. 핵발전은 공생 시스템이 아닙니다. '희생 시스템'입니다. 오직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존재가능 합니다.

밀양 촌로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쓰지도 않을 전기를 도시로 내보낼 송전탑 때문에, 전 생애를 바쳐 정직하게 일궈온, 논과 밭, 숲과 이웃을 잃고 있습니다. 밀양 촌로들과 이 투쟁에 함께 하고 있는 천주교 김준한 신부는 이를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표현합니다. 현세대의 안락과 편리를 위해 시골노인들더러 죽어달라며 내다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돈도 보상도 필요 없다. 제발 살던 대로 살게 해 달라." "송전탑은 핵발전소 자식이다!" 밀양 할매할배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엄청난 경찰병력 앞에 주저앉아 이렇게 울부짖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재앙이 발생한 뒤 그 지역에서 발생한 첫 죽음도 낙농인이었음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텅 빈 축사 벽에 '원전만 아니었다면.... 남은 사람들은 원전을 지지하지 않기 바란다.'는 유언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생태민주주의의 핵심 사안 중 하나는 미래세대에게 지속가능한 사회를 물려주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핵발전은 우리를 파렴치한 세대로 만듭니다. 미래세대는 부모세대가 무분별하게 누리고 넘겨준 핵쓰레기를 온통 떠안아야 합니다.

현 세대는 수많은 핵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정작 그것의 결과물인 핵쓰레기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답을 못 찾고 있습니다. 자기들 편할 대로 살다가 자식들에게 이 무서운 핵쓰레기 처리를 전가시키는 어른들은 얼마나 무책임합니까. 참으로 추악하고 양심 없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에너지도 이토록 폭력적으로 타인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에너지도 이토록 희생자들의 고통을 조롱하고 묵살하지 않습니다.
어떤 에너지도 이토록 가공할 파괴와 죽음을 몰고 다니지 않습니다.
어떤 에너지도 이토록 머나먼 미래의 시간까지, 죽음의 재를 떠넘기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핵마피아들은 더욱 당당하고 뻔뻔하게 지금도 '원전만이 최고다'를 외치고 다닙니다. 핵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정보를 왜곡하며, 거짓 선전에 열 올립니다. (중략)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원전중독국가인 우리나라의 위험 수치도 점점 일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세계 5위 원전 보유국, 원전 밀집도 1위, 부정부패와 뇌물비리, 안전불감증 속에서도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는 게 기적 같습니다. 한국은 후쿠시마 원전 재앙 뒤 세계 최초로 원전 계속 건설을 선포한 나라입니다. 현 박근혜 대통령은 ‘원전 수출국’이 되겠노라 자랑하며, 신규 핵발전소 대폭 확대를 집어넣은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중략)

'이제 그만하라!'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단호한 결단과 분명한 선택, 더 큰 용기만이 절실합니다. 원전 가동 제로인 일본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갑자기, 절반 가까운 원전이 가동 중단되는 상황을 겪었지만, 문제는 없었습니다. 핵마피아들의 ‘전력대란’ 위협만 시끄러웠을 뿐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에 눈 뜨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익명의 야만성에서 벗어나도록, 핵발전 환상과 의존증에서 치유되도록, 삶의 방식을 보다 소박하게 만들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알리고 알려야 합니다.

'더불어 잘 살자!'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함께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핵마피아들은 잘 살기 위해선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고, 그를 위해 더 많은 핵발전이 필요하다고 끊임없이 유혹합니다. 그러나 진실로 잘 살기 위해선 필요한 건, 희생 시스템이 아닌 공생 시스템입니다.

안전하고 평화롭게 사는 것, 이런 환경에서 자식을 돌보고 키우는 것, 이런 환경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 이보다 더 잘 사는 것은 없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부안과 밀양의 눈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 오랜 미래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그 절망 속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잘못된 구조와 망가진 삶의 희생자로 남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야말로 새 시대의 주인공들이고 역사의 영웅들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시아 엔지오 활동가 여러분. 우리의 귀는 언제나 침묵당하는 목소리들과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슴은 외면당하는 이들의 슬픔 기쁨과 닿아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일어서려는 이들의 용기와 의지를 배우고, 우리의 사고와 꿈은 이들의 호소와 열망에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다부진 실천과 연대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공생공명의 위대한 시대, 인류문명의 역사적 대전환을 열어 가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을 끝까지 응원하고 기도합니다. 축복합니다. 고맙습니다.


<전문>
http://blog.daum.net/paulmun21/8446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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