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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신앙이 주는 축복-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묵상
 문규현  | 2009·12·19 16:16 | HIT : 5,440 | VOTE : 361

 

 

한국천주교회, "정부는 용산해결을 위해 적극 나서라"
- 최기산 주교, 주교로서는 용산에 두번 째로 방문해 성명서 발표

 http://www.nah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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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묵상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최기산 주교님께서 18일(금)에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하셨습니다. 걸음 걸음 많은 고뇌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결코 쉽지 않았을 그 방문이 고맙기만 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최고의 성탄선물을 받는 듯 무척 기쁩니다.

마침 이번 주일 복음은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는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두 사람 다 참으로 난처하고 딱한 처지입니다. 마리아는 졸지에 아기 아버지가 불분명한 미혼모가 되어 대중의 비난에 찬 돌 세례를 받을 지경입니다. 고령의 불임녀인 엘리사벳도 느닷없이 임신한 탓에 수치스럽고 사람들 입에 올리기 좋은 대상이 되었습니다.

두 여인 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성령으로 잉태하였다지만, 그들을 둘러싼 현실은 참으로 두렵고 기막히게 외로웠을 것입니다. 특히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마리아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힘들었겠습니까. 젊은 여인과 나이 든 여인이 만납니다. 태중의 아기 예수와 장차 세례자 요한이라 불리울 태아들이 만납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보고 환호하고 축복합니다. 엘리사벳 태중의 아기도 마리아 태중의 아기를 향해 몹시 기뻐합니다. 각자에게 은밀하게 부여된 깊은 의미를 인정하고 드러내주는, 참으로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입니다.

용산은 교회가 자기소명과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고뇌하도록 했습니다. 교회는 용산을 방문하고 위로함으로써 고통 받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는 자기소명을 명백히 했습니다. 최기산 주교님의 방문과 더불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는 정부에게 “힘없고 가난한 국민의 눈물을 닦아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정평위 성명서는 마지막을 아래 내용으로 맺고 있습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다면 정부의 존재 이유를 진정 드러내주는 엄청난 성탄선물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통합과 화해를 이루고,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기쁨을 모든 국민이 함께 누릴 수 있도록 정부가 성탄절 전, 늦어도 올해가 가기 전에 용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합니다.”

신앙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숨어 우리를 기다리는 경이로움과 신비에 눈을 열고 그를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대림, 기다림이라는 것,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기다려서 얻고자 하는 것이 나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누릴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는 것을 신념으로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되지 않을 일에도 좌절하지 않고, 안 될 것 같은 일에도 미리 굴복하지 않으며 묵묵하게 희망의 길을 빚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신앙의 가슴으로 용산에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에 감춰진 수많은 구원의 신비를 깨닫고 기쁨 속에 바라볼 수 있길 바랍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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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이 주는 축복

2009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미카 5,1-4ㄱ

히브리 10,5-10

루카복음 1,39-45

신앙의 ‘효과’를 맛보지 못한 이들에게 대림절이나 성탄절에 들려오는 성경구절은 실제 생활에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하는, 그저 구닥다리 뜬구름 잡는 옛날 얘기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에게는 아기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는 첫 독서의 예언보다는 산타클로스나 루돌프 사슴 이야기의 발원지 같은 것이 더 흥미진진할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9마일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베들레헴도 사실 그 자체로는 의미 있을 게 없다. 구세주 아기 예수 탄생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신앙인이라 해도 도대체 기도에 대한 응답을 체험한 적도 없고 은총이란 말에도 감흥이 없는 건조한 신앙생활이라면 성탄절 주간의 성모 마리아 이야기에도 시큰둥할 것이다. 잘해봐야 동정심 없는 세상에서 힘들게 부대끼며 살아야 할 딱한 미혼모 이야기 수준을 넘어서기 힘든 것이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마리아의 임신 소식에 약혼자 요셉도 처음엔 조용히 파혼을 결심할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요셉의 이런 결심이 비신앙인들에겐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비신앙인들이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들은 또 있다. 나이 많은 엘리사벳의 임신 소식이 그렇다. 사실 엘리사벳의 임신은 남편 즈가리야와 지인들에게조차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마찬가지로 이해 불가한 임신을 한 어린 마리아가 고령 임신의 엘리사벳을 방문하였다. 오늘 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자 엘리사벳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고 한다. 그러나 비신앙인들에게 이런 모습들이 무슨 중요한 의미가 있겠는가. 무미건조한 이름뿐인 신앙인들에게 마찬가지이라. 사실 성경에는 깊은 신앙의 눈이 아니면 받아들이기 망설여지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비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은 급진적인 행동과 가르침으로 관습과 기득권에 도전했던 종교 정치 지도자들 중의 한 사람 정도로나 비쳐질 것이다. 그분의 수난, 고통과 죽음은 단지 그분이 선택한 것의 비극적 결과일 뿐인 것이다. 그분은 거룩한 희생제물이 아닌 것이다. 강압적 통치로 백성을 침묵시키며 평화를 강요하던 로마제국에 의해 제거당한 사형수였을 뿐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비신앙인들에겐 엄청난 위용과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바위와 충돌하여 산산이 부서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다름없다. 그분에 대한 세상 관심도 점차 흐려지고 과거 일처럼 되고 말리라고 비신앙인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신앙인들에겐 이 대림시기의 성경말씀들이 어떻게 다르게 들려야 하는가? 신앙인들은 이 시기가 가장 성스럽고 경건한 시기이며, 자신은 진정 축복받은 사람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가슴과 눈을 열어준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잉태한 사건, 엘리사벳이 뱃속의 아이와 함께 이를 환영하고 축하한 사건 속에는 인류구원 역사의 신비가 담겨있다는 것에. 그리고 모든 신앙인들이 지속적으로 그 의미를 묵상하고 그 의미를 생생하게 살려내기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것에.

베들레헴은 아랍어로 بَيْتِ لَحْمٍ‎(house of meat), 히브리어로 בֵּית לֶחֶם‎, Beit Lehem(house of bread)이다. ‘푸줏간’ 또는 ‘빵집’이라는 뜻인데 우리식으로는 ‘떡집’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예수님을 세상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게끔 하신 하느님의 계획에 걸맞은 마을 이름이다. 그 작은 마을 허름한 곳에서 어둠에 쌓인 지상에 평화를, 상처입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섬김과 치유를 가져올 메시아가 태어나셨다. 두 번째 독서 히브리서 저자는 그렇게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고 말한다. “노엘 노엘 이스라엘 왕이 나셨네~.” 하는 기쁨 가득한 성탄절 노래는 저 성금요일의 그리스도 희생과 맞닿아 있고 그를 통해 죄인들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태중의 요한과 태중의 아기 예수가 만나는 순간, 그 순간은 구 시대가 새 시대를 맞이하고 기뻐 약동하는 순간이다. 오랫동안 메시아를 갈망해온 구 시대가 마침내 오신 메시아를 위해 길을 닦고 내어 드리는 순간이다. 이렇게 성탄절은 낡은 것 위에 새로움이 움트고 절망과 체념 위에 희망이 피어나는 시간이다. 불가능도 가능하게 되고 꼴찌가 첫 째로, 미약한 이들이 가장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임을 선포하는 놀라운 시간이다. 신앙인이란 이를 볼 수 있고 이를 확신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 기쁨과 희망의 대열에 자신도 세우는 사람들이다. 이 대열에 들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가는 여정이 구원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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