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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04-03-28(사순제5주일)
 문규현  | 2004·03·27 08:47 | HIT : 8,747 | VOTE :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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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년 3월 28일
    사순 제5주일



    이 주일의 묵상: 법률 조문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합니다
    나이지리아의 무슬림인인 아미나 라왈은 한 여섯 달 전쯤에 정부로부터 돌에 맞아 사형 당하는 형의 집행을 연기받았다. 2년 전에 간음죄로 잡힌 라왈은 그녀의 아이 와실라와 함께 법정에 서서 판사가 자신의 형 집행을 연기한다는 판결을 들었다. 라왈은 간음죄목 때문에 온몸은 목까지 파묻힌 채 죽을 때까지 머리에 돌을 맞는 형에 처하게끔 되어 있었다. 그 형벌에 전 세계의 인권운동가들이 분노하였다. 이 인권단체들의 압력 속에서 담당 판사는 그 극형을 빠져나갈 수 있는 법의 허점을 발견하였다. 판사는 아미나 라왈의 죄가 무효라고 선언하였다. 왜냐면 혹독한 이슬람 샤리아 율법이 라왈이 사는 지역에 시행될 즈음엔 라왈이 이미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절도자에게는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주게 하는 그 샤리아 율법 아래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에서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런 혹독한 상황에서 판사의 형 집행 연기 판결소식을 들은 라왈은 CNN 기자에게 말하길 “너무 행복합니다. 신은 위대하시고 그분이 바로 이 기적을 만드셨습니다”하고 했다.

    이천 여 년 전에 율사들과 바리사이들도 간음을 저질렀다는 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왔다. 그들은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기 위하여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를 물었다. 예수님은 그들의 책략에 압박을 받거나 율법상의 허점이 무엇인지를 찾기보다 여인을 고발하는 자들의 양심에 대고 호소하셨다. 그대들 가운데 과연 죄 없는 이들이 있는가? 그대들의 죄가 만일 공적 자리에서 낱낱이 까발려지거나 하느님의 심판의 빛 앞에 비춰져야 한다면, 그대들 또한 모든 이들 앞에서 참으로 수치스럽게 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율법 조목 조목마다 그대들에게 적용된다면 과연 그대들이 간음한 여인보다 더 낫다고 말해질 수 있을까? 하느님께서 그대들에게 베풀어주신 자비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비슷한 자비를 동료인 죄인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날 성전에서 그들이 들은 것은 율법에 대한 개요가 아니다. 대신에 죄인들, 즉 온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온유함, 인내와 용서에 대한 가르침이다. 여인을 고발한 자들이 예수님의 그 가르침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그들은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기 때문이다.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예수님이 땅에 적은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그들의 죄목에 대해 적으셨을 거라 한다. 그러나 아마도 예수님은 시편저자의 다음의 말을 적지 않으셨을까?: “야훼께서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신다....야훼여, 당신께서 사람의 죄를 살피신다면,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그러나 용서하심이 당신께 있사오니 이에 당신을 경외하리이다.”(시편 103:8-10; 130:3-4. 7-8).

    나이지리아 법원의 판결로 일시적이나마 자유인이 된 라왈의 체험이 의미심장하다. 라왈은 재판장이나 법적 제도에 감사하지 않았다. 또는 자신을 위해 분노의 파도를 일으켰던 전 세계인들의 목소리에 대해서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알라에게 감사를 드렸다. 자비라는 이름을 지니시고 사랑 가득한 용서라는 행위를 보여주신 그 신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 자비와 그 사랑의 용서가 예수님 안에서 육화되었다. 그리하여 라왈과 같은 죄인인 오늘 복음에서의 여인, 그리고 다른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삶 속에서 이 은총의 선물을 체험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사순기간이 절정을 향해하고 있는 이 시점에 라왈과 간음한 여인, 이 두 여인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돌을 들고 고발하는데 더 익숙하지 않은가.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시선은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면 자비의 하느님께서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돌을 내려놓으라고 우리를 부르실 것이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죄로부터 벗어나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의 선물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8:1-11
    오늘의 복음말씀은 초기 그리스어본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뒷날의 라틴본에서는 찾아볼 수 있다. 또 제롬이 이 이야기를 불가타 성서에 포함한 이래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것의 정경성에 대하여 의심해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요한계 이전의 저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언젠가부터 요한복음에 포함되었는데 예수님의 활동에 대한 아주 중요한 증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죄인들의 소중함을 율법 조문보다 높이 두었으며 하느님의 관대함과 자비로운 용서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어떤 학자들은 말하길, 엄격한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고자 했던 초기 교회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수용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오늘 이야기는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백안시되었으며 뒤에 가서야 받아들여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죄를 무시하거나 작게 보려 하시지 않았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대신에 여인에게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용서를 선물했을 뿐이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여인에게 책임을 부과하셨다: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를 짓지 마시오.”(11절). 그러나 명심할 것은 예수님께서 여인과 홀로 남겨졌을 때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셨다는 점이다. 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구원자로서 말이다. 그렇다면 하나씩 하나씩 떠나간 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어떤 학자들은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로 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지 모른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땅에 쓰신 흔적이나 글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도 말한다. 제롬은 예수님께서 땅에 쓰셨던 것은 거기 있던 사람들의 죄목이 아닐까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재판관이 피고에게 큰 소리로 판결문을 읽어주기 전에 먼저 그 판결에 대해 써 내려갔던 것을 예수님께서 모방하신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한다.

    오늘 이야기에 대해 아마도 가장 폭넓게 연구했을 레이먼드 브라운은 예수님의 행위와 다른 여러 성서 구절을 연관시킬 수 있을 거라고 제안한다: (1) 다니엘서 5:24: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손가락을 내 보내시어 저 글자들을 쓰게 하신 것은 그 때문입니다.” (2) 예레미야 17:13: “주님을 저버리고 어느 누가 부끄러운 꼴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맑은 물이 솟는 샘 야훼를 저버리고 어느 누가 땅에 쓴 글씨처럼 지워지지 않겠습니까?” (3) 출애굽 23:1: “너희는 근거 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죄 있는 편에 합세하여 권세부리는 자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지 말아라.”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쓰신 것이 과연 무엇인지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다: “당신들 가운데서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지시오.” 또한 하느님의 사랑 가득한 용서와 자비를 보여주셨다는 것이고, 그것이 죄인들로 하여금 회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온 삶을 통하여 하느님과 화해하고 계속해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죄를 짓지 않도록 부지런히 노력해야 한다.

    (from March 28, 2004, Preaching Resources [Celebration], An Ecumenical Worship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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