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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하느님의 메신저들-3월 22일 사순 제4주일
 문규현  | 2009·03·21 12:14 | HIT : 6,009 | VOTE : 462

 

2009년 3월 22일 사순제4주일 묵상

집안에서는 많은 가장들이, 또는 부모들이 의견과 주장을 독점합니다.

직장에서는 상사들이 또 그렇습니다.

종교권력자들은 신의 계시를 독점하여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지속시키려 하고,

정치가들은 고급정보와 소통수단을 독점하여 국민을 지배하려 합니다.

이명박 정권이 소위 ‘미디어법 개정’에 집착하는 것도 메시지 전달수단을 장악하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메시지를 가공하여 사람들 정신과 가슴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일 것입니다. 


메신저를 자청하는 사람은 그 메시지와 메시지 전달의 중심에 자신과 자신의 이익을 두어왔습니다. 그것은 우월적 지위와 이익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됩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래왔고, 물론 지금 현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 정상이고, 공유와 나눔이 아니라 독점과 통제가 정상이고

생명과 희망의 메시지가 아닌 위축과 억압의 메시지가 당연하다는 듯이 행해져왔습니다.


하느님의 메신저들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이들이 아닌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아닌,

자신들 메시지의 진정성 때문에 도리어 박해받고 오해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명백하게 그 메신저들의 절정이셨습니다.

자신은 한없이 낮추고, 다른 이는 한없이 섬기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 분이셨습니다.

우리도 당신처럼 하느님 안에 있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하느님의 생명의 메시지를 나누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나눠 갖고 영원한 구원을 얻길 바라셨습니다.

하느님 메시지를 독점하고 메신저를 자칭하는 기존 권력자들과 종교지도자들, 기득권자들은 참으로 속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께는 오로지 하느님 메신저로서의 신원만을 생각하시고 굴하지 않으셨습니다.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

생명, 평화, 사람에 대한 메시지가 독점되고 파괴되고 있습니다.

왜곡되고 상처입고 부서지고 있습니다.

존재들은 생명력을 잃고, 세상은 평화를 박탈당하고 있으며, 사람다움은 너무도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체투지 기도순례 속에서 다시 간절한 물음을 던집니다.

생명의 길은 무엇이고, 평화의 길은 무엇이며, 사람의 길은 과연 무엇인지....

우리 시대의 예수님 메신저들은 그분의 메시지를 무어라 전하고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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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메신저들

        2009년 3월 22일 사순 제4주일


        역대기 하 36,14-16.19-23

        에페소서 2,4-10

        요한복음 3,14-21


나이 든 사람들은 그런 기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멀리 우체부가 보이면 혹시 자신에게 오는 전보나 편지가 있지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던 그런 기억 말이다. 특히 전보에는 갑작스런 안 좋은 소식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아 혹시나 싶어 가슴이 덜커덩 내려앉게 만들곤 했다. 전쟁에 남편이나 자식을 보낸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오늘날에는 엄청난 양의 정보와 뉴스들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고 소통된다. 나쁜 소식들과 좋은 소식들이 동시에 실린다. 인터넷 상에 소식을 올리는 수많은 메신저들의 실체를 우체부처럼 눈앞에서 볼 수는 없다. 인터넷 통신망을 깔아놓은 회사도, 많은 뉴스를 한 화면에 올려놓는 포털들도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할 뿐이다.


현대와 같은 통신수단이 있기 전에는 사람이 소식을 직접 전하는 역할을 했다. 마라톤은 B.C.E 490년에 페르시아-아테네 전쟁에서 열세이던 아테네가 승리하자, 격전지 마라톤 광야에서 아테네까지 약 40Km를 달려 승전보를 전하고 죽은 전령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는 파발제도가 있어 메신저가 말을 타고 가거나 도보로 중요한 문서나 서신을 전하곤 했다. 메신저들은 때에 따라 목숨을 걸고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메신저에 대해선 다양한 정서가 존재했기 마련인데, “나쁜 소식을 전해주는 메신저를 사랑할 이는 아무도 없다”며 야유하는 경우도 있고(B.C.E. 5세기경의 작품  Antigone에서 소포클레스가 한 말), “메신저를 쏘지 말라!”고 외치며 보호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Shakespeare의 작품 ‘HenryⅣ, Part2'와 ’Antony and Cleopatra').


오늘 성경말씀에는 메신저들이 겪은 위험과 수난이 그려져 있다. 첫 번째 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보내준 하느님의 많은 메신저들이 인간에 의해 탄압받고 거부당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과 당신의 처소를 불쌍히 여기셨으므로, 당신의 사자들을 줄곧 그들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자들을 조롱하고 그분의 말씀을 무시하였으며, 그분의 예언자들을 비웃었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셨다. 그 결과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백성들은 망가질 대로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외세는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하나가 물러가면 또 다른 침공이 이어졌다. 결국에 살아남은 자들은 바빌론으로 유배되었고, 종살이를 하게 되었다. 이는 페르시아 제국이 통치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하느님께서는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마음을 움직여 도구로 삼으셨다. 키루스는 “온 나라에 어명을 내리고 칙서도 반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탄생을 선포하였다. 키루스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새로운 삶의 방식과 하느님 경배의 길을 가야한다며 “나는 너희 가운데 그분 백성에 속한 이들에게는 누구나 주 그들의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빈다.”고 외쳤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예수님을 당신의 메신저로 삼으시어 세상에 보내셨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보내신 메시지와 메신저의 절정이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죄 많은 인간세상과 소통하고자 하셨다. 비난할 거리들에 대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관해서 말이다. 메신저 예수님이 가져오신 메시지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메시지를 들고 말하러 온 메신저 예수님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이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에 갇힌 세상에 빛을 주려고 빛으로 오셨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빛에서 멀어져 두려움에 떨거나 숨을 필요 없는 진리 안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현재에 이르는 동안 예수님을 대리한 숱한 메신저들이 있었다. 그 와중에 어떤 메신저들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길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기도 했다. 어떤 메신저들은 서한이나 신경 등을 통해 예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기도 했고, 어떤 메신저들은 교회의 공식적 지위가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통로라고 주장하며 위계질서를 정립하는데 열중하기도 했다. 어떤 메신저들은 어떤 형태의 전쟁이나 탐욕, 폭력이나 불의도 용납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다른 이들을 향한 헌신과 투신의 현장에서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속에 계신 예수님과 그분의 메시지를 확신하고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특권과 책임에는 하느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미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옹호하라는 메시지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메시지라고 해서 모든 말씀이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이상적인 얘기라거나, 실현불가능하다거나, 현실에 안 맞는다거나, 교회 내외에 갈등과 분란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거나 하는 등등으로 배격당하고 외면당하는 예수님 말씀들이 엄연히 있다. 예수님 말씀이 실천되고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은 바보나 문제아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어떤 메신저들은 우리가 가르치고 설교하는 것과 실제 우리의 삶에는 간격이 존재한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한다. 그들의 지적은 때로 듣기 힘들 정도로 독설스럽다. 에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이 당대 종교지도자들이나 권력자들에게 민감하고 불온하게 받아들여졌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신랄한 메시지 이면에는 진실과 진리가 담겨져 있기에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런 통찰과 지적들에 대해 성령이 주시는 용기와 더불어 하느님의 말씀과 복음으로 새롭게 귀 기울이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새롭게 살도록 도전할 수 있다면, 그 누구이든 하느님께서 우리의 삶의 길을 안내하도록 보내주신 모든 메신저들을 환영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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