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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한 목자 아래 다양한 양들-5월 3일 부활제4주일
 문규현  | 2009·05·02 22:26 | HIT : 5,965 | VOTE : 440

 

2009년 5월 3일 부활제4주일, 성소주일에

 


34년 전 오늘 1976년 5월 3일, 저는 제 생애의 오체투지를 시작 했습니다. 이날은 제가 사제직을 받은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앞에 오체투지로 엎디어, 당신 마음을 닮고 당신 생애를 닮은 날을 살아가겠노라 맹세한 날입니다. 육신과 영혼의 새로운 생일날이었습니다. 오늘 성소주일에 오체투지 기도순례와 함께 제 사제수품일을 되돌아보며, 과연 내가 이 34년간의 순례길을 제대로 오긴 온 것인지 다시 곱절로 묻게 됩니다.


지난 수요일입니다. 경기도 평택에서 오산 넘어가기 직전 구간에서 기도순례를 하고 있는데 인도로 지나가던 아이들이 저희를 보고 희한했는지 “어, 자빠지네.” 하는 겁니다. 그런데 저희가 엎드려 잠시 있으니까 아이들이 더 놀라서, “자빠지더니 안 일어나네. 죽었나봐.” 하며 걱정을 하는 겁니다.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보고 말하지요. 그 아이들의 천진함에 웃음 참으며 절하느라고 애 좀 먹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본 것은 사람들이 자빠지고, 그 자빠진 사람들이 죽고, 또 죽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서 다시 길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목격한 엠마우스 사건과 비슷하지 않습니까? 자빠지고 죽고, 죽고 살아나고... 오체투지 절 한배에 인생 순환원리가 담겨있는 듯합니다. 삶과 죽음과 부활, 섬김과 내어줌과 거듭남, 낮춤과 비움과 새로남, 비움과 소멸과 새 생명.... 이것들은 서로 분리된 것들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하나의 행위는 이미 다른 행위에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삶이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행위 한 점 한 점이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무엇이 되었건 간에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죽습니다. 무상하고 광대한 우주에 점 하나 찍는다, 별 것 아니다 하지만 우린 하느님이 주신 고귀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무엇 하나라도 세상을 좀 더 하느님 뜻에 걸 맞는 괜찮은 곳으로 만들어놓고 가야합니다. 


멕시코독감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사스, 광우병, 조류독감, 이제는 멕시코독감까지, 듣도 보도 못한 질병들이 창궐하며 인류를 위협합니다. 멕시코 어느 작은 마을, 한 아이에서 시작했다는 이 전염병이 지구를 온통 뒤숭숭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주일미사도 함께 못보고 파란마스크를 쓴 사제는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어른들이 자식들에게 이렇게 불안한 지구를 넘겨주고 있습니다. 보다 안전하고 보다 살기 괜찮은 사회환경 자연환경을 물려줘야 할 터인데, 이토록 겁나고 무서운 사회를 재산이랍시고 물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저 혼자 살아보겠다고 담장을 높이 쳐도 절대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멕시코 가난한 나라에서 생긴 바이러스가 잘 먹고 잘 사는 미국과 그 심장부 뉴욕마저 공황상태로 만들고 있습니다. 멀고 먼 이 아시아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고 안전한 지대는 더 이상 지구촌에 없습니다. 지구에 사는 우리는 서로 한 지체이고, 생명의 고리로 엮이어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훌륭한 부모는 내 아이 공부 잘하는 것에만 열중할 수 없습니다. 아이가 살아가기 좋은 사회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도 헌신해야 합니다.


오늘은 ‘성소주일’입니다. ‘성소’는 ‘거룩한 자리’라고 풀어쓸 수 있겠지요. 대체로 사제직이나 수도직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날이지만, 우리 모두가 바로 ‘성소자’임을 성찰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한 인생 살아가며 책임져야 할 거룩한 자리를 내맡기셨습니다.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자리, 지금여기가 바로 성소입니다. 내 말과 행위로 만드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성소의 현장입니다.


순례길에 한 아주머니가 오더니 “아이구,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뭔 고생을 이리 하세요.” 하며 안타까워합니다. 순례단이 사실 초라하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자식에게 또는 연인이나 이웃에게 사랑을 퍼줄 때 누구 보여주려고 하진 않을 것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남의 시선에 좌지우지 되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하셨고,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반응과 결과를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성소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과가 보이지 않고 의혹으로 가득해도, 오직 하느님 앞에만 서있는 자리입니다. 내 진정한 마음을 하느님께서 알아주시는 자리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만인 속 성소자입니다. 흔하게 ‘평신도 사제직’이라는 말을 합니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성화시키는 것, 이것이 성소주일에 만인의 성소자로서 우리가 파견되는 의미입니다. 그 성소가 자빠지고 죽고 다시 벌떡 일어서는 것의 반복일지언정, 그래서 그냥 시련은 여전하고 희망은 미미해보일지언정, 한 걸음 한 걸음 거룩함을 택하면 결국 거룩한 길이 닦일 것입니다. 안일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위를 택하면 결국 그런 인생길이 닦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길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용산참사 100일이 지났습니다. ‘너희는 아예 국민도 아니었고, 지금도 없는 존재이다’ 하고 이 정부는 계속해서 모욕하고 짓밟습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철저하게 거부하는 이 야만과 몰인간성을 이기는 방법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선함과 측은지심에 더 많은 양분을 주고 더 많이 퍼 올려 쓰는  것입니다. 망자들의 부활과 그 가족들의 깊은 고통의 치유는 오로지 이 참사를 잊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해주고 기도해주는 성소자들, 우리들에 의해 이뤄질 것입니다.


생명의 달, 가정의 달인 아름다운 5월입니다. 확신과 용기가 생명을 불러오고 희망을 키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생명의 고리 속에 있는 하나의 가족임을 잊지 말고, 질기고 꾸준하게 신앙인의 소명을 다해갈 수 있기 바랍니다. 자기성소를 지키고 소명을 다하는 것은 사실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고, 우리 자신을 성스럽게 하려는 자기헌신입니다. 우리가 길을 가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바라는 소망은 이미 여기서 실현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 길에 동반하고 계십니다.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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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목자 아래 다양한 양들

        2009년 5월 3일 부활 제4주일

        

        사도행전 4,8-12

        요한 1서 3,1-2

        요한복음 10,11-18



가족 구성원 중 어느 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거나, 또는 부모가 이혼하고 남아있는 배우자가 재혼을 하거나 하게 되면 그 가족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된다. 특히 재혼가정과 같은 ‘혼합가정’에는 새로운 유형의 갈등이 조성되기 마련이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생활습관이나 가치관이 충돌할 수도 있고, 성격차이로 인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고, 관계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차원이나 방식이 틀려서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공동체가 그러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모두가 하나라고 믿어왔지만, 자신들이 ‘혼합가정’이라는 걸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느덧 공동체의 일치됨과 하나됨은 위협받기 시작했다. 공동체에는 먼저 유대인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누구보다 먼저 구원의 선물을 베푸시며 함께 하셨던 민족이다. 어떤 유대인들은 그 선물을 받아들였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예수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틀려 그들 사이의 갈등은 고조되었고 나누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첫 독서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믿기를 희망하며 계속해서 모든 유대인들을 초대하였다.  


이 그리스도교 ‘혼합가정’에는 또한 전통적으로 ‘이등시민’이라고 대접받아온 비유대계 사람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과 돌봄 대열에 끼지 못하는 열외시민으로 치부되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의 구원자이고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을 그 ‘열외시민’들의 보호자이자 지도자로 자청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는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양들도 있다. 나는 그들도 데려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마침내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가 될 것이다.”고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무 차별 없이 당신이 사랑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다.”고 하셨다. 인종과 성별, 나이와 빈부, 가치 있는 자와 무가치한 자에 상관없이 당신을 믿고 따르며 당신의 메시지를 행하는 이들을 위해, 더 큰 의미의 ‘혼합가정’이요 ‘혼합공동체’인 인간사회를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로 품기 위해 생명을 바치시겠다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 이래로 이천년을 넘는 세월을 지나오면서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수정하기도 하고 또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오기도 했다. 외부로부터 박해받고 거부당하기도 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몰이해와 갈등 속에서 갈라지기도 했으며, 교회가 사회의 기득권자요 권력자로서 호사와 행세를 누리기도 해왔다. 어쨌거나 매 해 부활주간은 바로 우리 신앙의 뿌리에 대해 다시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신앙공동체의 정체성과 근본에 대해 묻고 성찰하는 시간이다. ‘한 목자 아래 한 양떼’가 지닌 혼합성과 다양성이 가져다주는 명암을 수용하는 시간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의 믿음에 뿌리 두면서도, 다양성을 지닌 양들은 저마다의 고유함을 주장한다. 개체의 고유성은 당연한 것이고 존중되어야 하나, 이것이 예수님께서 당신의 양들에게 그리도 강조하고 원하셨던 언제나 상호 돌봄과 인정, 수용이라는 공동체 정신과 언제나 함께 하지는 않는다. ‘한 목자 아래 한 양 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신념에 더욱 밀착하기 위해선 전문가들이 ‘혼합가정’에 해주는 조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최선책 중 하나는 상식적으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즉, 서로에게 친절하고 인내하며 존중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일치하고 공유할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또 서로의 차이를 일치를 저해하는 요소로 볼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자산으로 여기며 배우고 존중해야 한다. 구성원들의 감정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열려있어야 한다. 갈등은 무시하거나 없는 척 하지 말고 드러내고 다루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서로를 가치 있게 여기고 존중하는 이타적 행위를 배양해야 한다. 마음이 상처받고 관계가 부서질 때는 무조건 용서부터 들고 나오지 말아야 한다. 행위를 먼저 고치려 노력하고 진심어린 마음과 손길로 치유하며 다가서야 한다.


이 같은 조언을 통해 개별 핵가족이 얻어가는 것이 있다면 예수님의 가족인 그리스도교 공동체 또한 분명 얻을 것이 있지 않겠는가? 오늘 두 번 째 독서인 요한1서의 가르침에 의하면 우리는 그럴 수 있는 존재이고 그러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다. 예외 없이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사랑스런 자녀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서로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우리가 그 사랑을 확신하고 믿는다면, 그 사랑의 힘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한다면, 그 사랑은 수많은 것들을 변화시킬 것이다. 정말로 절망적이고 좌절해있는 가정에도, 부서질 대로 부서진 관계에도 틀림없이 희망의 싹을 틔워낼 것이다. 하느님 안에 뿌리 내린 사랑, 하느님 안에 믿음을 둔 사랑은 ‘혼합’이 내포하고 있는 갈등과 긴장을 풍성함과 역동성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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