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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하느님의 꿈을 뵙다-1월 3일 주님공현대축일
 문규현  | 2010·01·02 17:51 | HIT : 5,211 | VOTE : 441

2010년 1월 3일 주님공현대축일 묵상

하느님의 꿈을 뵙다

 

2010년 새해입니다. 좋은 꿈 많이 꾸고 새로운 계획 좀 세우고 계십니까. 새해만 되면 분위기에 떠밀려서라도 뭔가 새로운 시도와 도약을 모색하게 되지요. 꿈이 무언가요? 생각만 해도 신나고 가슴 뛰고 기분이 마구 좋아지는 미래의 희망입니다.

오늘 주님공현대축일 복음을 보면 동방박사 세 사람은 저 높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고선 세상의 구세주가 탄생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분해서 가슴이 쿵쾅거렸겠지요. 세 양반이 서로 환호하고, 하이파이브도 하고, 좋아서 난리도 아니었을 겁니다. 오랫동안 꿈꿔온 세상, 그 세상을 마침내 완성시켜주실 그분이 드디어 세상에 오셨으니까요. 그래서 동방의 세 양반은 의기투합해서 바로 길을 나섰고, 그토록 고대하던 아기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동방박사 세 사람이 수많은 밤하늘 별들 속에서 특별한 별을 구별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그 별이 구세주별임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그분들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그려온 꿈, 소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꿈도 소망도 비전도 없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아마 아기 예수님이 자기 옆집에서 태어나셨어도 못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수많은 사람들이 해산을 앞둔 마리아와 요셉에게 무신경했던 탓에 딱하게도 예수님께서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야 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것은 중요합니다. 가치의 중심을 잡고 그에 맞는 미래상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를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가정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부모 어떤 자식이 되고 싶은지, 어떤 직업을 갖고 싶고 세상에 무엇으로 기여하고 싶은지, 또 어떤 세상이 되기를 원하는지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향해 끈기 있게 노력하고 실천할 때 성장과 발전이 있습니다.

평화동성당에서는 2009년을 보내는 12월 31일 송구영신 미사 때 저마다 2010년 소망을 적어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참 즐겁고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대박!” 같은 것들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 착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소망들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의 꿈이 실현 가능하고, 이런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정말 주인대접 받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좀 더 나아갈 수 있기를 꿈꿉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용산참사를 두고 여러분과 함께 내내 가슴앓이 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타결’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서 장례식이라도 치러 희생자들을 보내드려야 한다는 가슴 아픈 ‘반쪽짜리’ 해결책입니다. 참사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서민들, 가난한 이들 중심의 정책이 수립될 때 진실로 용산참사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벌중심의 현 정권이 자기 뜻과 이해관계에 도움 되지 않으면 그냥 ‘청소’해버린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게 용산참사입니다. 그래서 이 사악한 정권의 온갖 탄압과 무시에도 굴하지 않고 얻어낼 수 있었기에 반쪽짜리 승리여도 소중한 것이고, 반쪽짜리이기에 나머지를 완성하기 위한 새로운 출발과 꿈꾸기가 계속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마 용산참사의 의미를 세워나가는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일 것입니다.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실천을 작든 크든 꾸준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언젠가 덜컥 그 꿈이 실현될 날을 볼 것입니다. 구세주 오심을 꿈꾸던 동방박사 세 사람이 아기예수별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되었듯이 말입니다. 꿈 없이 반복되는 삶에는 생기도 희망도 없습니다. 꿈만 꾸고 실천이 없으면 몽상입니다. 착하고 선한 이들, 소박한 사람들의 작은 희망들이 소중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향해서, 생명과 정의가 모든 것의 중심이 되는 사회를 향해서 함께 꿈꾸고 함께 노력해나갑시다.

                   -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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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꿈을 뵙다

2010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야서 60,1-6 / 에페소서 3,2.3ㄴ.5-6  / 마태복음 2,1-12

새해다. 새로운 목표도 세우고 즐거운 꿈에 상상도 더해보고 비전 만들기에 부산하다. 중요한 작업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속으로 그려본다고 해서, 달력 위에 혹은 다이어리에 계획을 적는다 해서 원하는 바가 저절로 성취되지는 않는다. 꿈꾸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는 것에는 엄연히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

오늘 첫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야말로 엄청난 꿈을 꾼다. 오랜 암흑을 뚫고 눈부신 빛이 관통해오는 것처럼 눈부시고 경이로운 꿈이다.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웠던 바빌론 포로 시절은 종식되었다. 하느님의 용서가 베풀어지고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그렇게 유배자의 삶을 마치고 귀향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더 큰 은총이 베풀어지니, 다른 민족들조차 그 이스라엘의 빛을 향해 오는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른 민족 임금들이 떠오르는 이스라엘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고, 그들이 모두 모여 이스라엘에게로 온다고 공언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성취될 온 세상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백성들 속에는 편견도 차별도 없을 것이다. 누구도 소외받거나 배척당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환영받을 것이다. 인종차별도 성차별도 빈부차별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하느님의 환대와 돌봄만이 존재할 것이며, 모두가 그분의 사랑과 자비 가득한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민족들은 저마다의 언어와 감정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것이다.

예언자가 꿈꾸는 이 거대한 비전이 오늘 복음에서도 반복되어 제시된다. 신이시면서 인간세상 속으로 들어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고대 예언자가 꿈꾸던 하느님 나라가 드디어 성취되는 것이다. 동방에서 세 명의 성자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다는 얘기는 유대인에게만 또 유대인을 통해서만 하느님 평화가 내려지고 구원의 섭리가 작동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예수님은 만백성을 향해 오신 분이고 만백성이 그분을 찬양하는 것이다.

두 번 째 독서 에페소서 저자는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가 “과거의 모든 세대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은 성령을 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되어 “곧 다른 민족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의 저 거대한 꿈과 예수님께서 강림하신 목표는 아직 이 지상에서 실현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세세대대 모든 역사 속에서 이 비전은 지속적으로 거부당하고 폄하되었으며 도전받아왔다. 분열과 대결, 갈등과 전쟁, 숱한 차별과 억압이 민족을 가르고 민족과 민족을 대결케 하였다.

고대 예언자가 선포했던 그토록 아름다운 비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갖고 오신 구원의 비전은 왜 성취되지 못하고 있는가. 문제의 원인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며 남 탓하고 책임 돌리는 게 제일 쉬운 일일 것이다. 내가 감당할 몫은 아니라고 거리를 두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갖는 것도 쉽다. 그러나 핵심은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데 있다. 이사야 예언자의 비전과 그리스도 구원의 의미를 우리 자신이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무책임과 무관심, 이기심과 욕심을 넘어서 책임과 능동성, 공존과 이타심 앞에 나 자신을 열어야 하는 것이다. 외부로 향하던 손가락을 내려놓고 탓하기를 멈추는 것, 이것이 첫 걸음이다.

제대로 하지 않으려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완벽주의’적인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만나지 않을 것 같으면 아예 한 걸음도 떼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그렇지 않으면 일을 망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회의에 압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 ‘주님공현대축일’의 동방 박사들을 보라. 낯선 징표, 낯선 민족, 낯선 길에도 불구하고 동방 박사들은 주님을 찾고 경배하기 위해 걸음을 떼었다. 예수님께서는 부족하기만한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기 위해 먼저 돌아가 자기수양을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와라.”고 하지 않으셨다. 도리어 “베드로, 너는 베드로이다. 너를 사랑한다.”고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받아주셨다.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 주님을 뵙고 경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꿈을 본다는 것이다. 그분을 통해 선포되고 그분을 통해 완성될 위대한 하느님 비전을 본다는 것이다. 동방 박사들은 그 꿈, 그 비전을 향해 쿵쿵 뛰는 가슴과 선물만 들고 무조건 길을 나섰다. 나서지 않았으면 만인의 구세주를 만나 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분을 보면 좋겠지’ 하는 부질없는 상상 속 열망으로만 남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꿈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비전을 이루고 싶다면, 단지 상상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부터 아니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부족하더라도 시작한 한걸음의 행동과 실천이 꿈과 구원 성취의 에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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