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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행복한 설날 되십시오-2월 14일 연중 제6주일
 문규현  | 2010·02·13 00:05 | HIT : 5,210 | VOTE : 404

행복한 설날 되십시오

2010년 2월 14일 연중 제6주일 묵상 

 

설날입니다. 덕담 많이 들으시고 또 많이 던져 주십시오. 그러나 좋은 말이라고 내 기준으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처지를 잘 고려해서 해야 합니다. 안 그러면 불화만 생깁니다.  

대학생들이 명절에 제일 듣기 싫은 소리는 “좋은 데 취직해야지”라는 말이랍니다. 약 올리려고 부러 하는 말은 아니어도, 안 그래도 취직 중압감에 시달리는 그들에게는 더욱 부담스럽고 위축되는 말인 것입니다. 또 이래라 저래라 잘난 척 하는 어른들이 제일 싫답니다. 무슨 말을 해줘야 하나 고민되면 그냥 조용히 등 두드리며, 작더라도 세뱃돈이나 용돈 주세요. 제일 받고 싶은 게 압도적으로(70%) 그거랍니다. 그리고 격려하고 인정해주는 등의 말을 듣고 싶답니다.  

어디 대학생들만 그렇겠습니까. 역지사지로 우리가 듣고 싶은 말, 듣고 싶지 않고 보고 싶지 않은 말 생각해보면 다 마음은 비슷비슷 합니다. 겉으로 던지는 말의 양이 아니라, 한 마디를 하더라도 거기 담은 진심과 질이 중요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당신 멋져!’를 듣고 간 어떤 분이 그날 저녁에 당장 잘 써먹었다는 말을 전해왔습니다. 오라버니들하고 술 한 잔 걸치면서 “우리 오라버니들 멋져!” 하고 응용했다는 거지요. 사실 자신의 오라버니들은 그다지 멋지다고 할 수 없는 분들이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 자기도 좋았고 오빠들도 무척 좋아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모두 즐겁고 행복한 밤이었답니다.  

특히나 명절은 우리의 약한 마음들이 위로받고 튼튼해지는 시간입니다. 서로 주고받는 덕담과 격려 속에 한 해를 용기와 희망으로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더 긍정적이고 힘이 되는 말들 많이 주고받으십시오. 더욱이 이번 주일 묵상으로 듣는 예수님의 행복선언은 우리에게 금상첨화, 귀한 덕담이요 선물입니다.  

종종 나라별 행복도 순위라는 게 발표되곤 합니다. 지난 12일 미국 CNN 보도에 따르면, 아일랜드 잡지 ‘인터내셔널 리빙’이 매년 선정하는 각국의 ‘삶의 질’ 평가가 발표되었답니다. 여기서 프랑스가 1위이고 그 뒤로 호주 스위스 독일 뉴질랜드 룩셈부르크 등이 차지했습니다. 아시아 국가에서는 일본이 36위, 한국이 42위, 싱가포르가 70위, 중국이 97위입니다. 194개국 중에 42위이니 괜찮다 싶을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지금 한참 국가적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그리스를 비롯해, 브라질, 우루과이, 코스타리카, 아르헨티나, 칠레, 에콰도르, 파나마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평가됐답니다.  

행복지수는 ‘삶의 질’을 평가합니다.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닙니다. 이번 삶의 질 평가는 생활비, 문화와 레저, 경제, 환경, 자유, 보건시스템, 사회기반시설, 치안, 기후 등에 각각 점수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집계됐다고 합니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행복도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지수는 마음의 행복과 정치사회환경적 행복이 통합된 것입니다. 마음도 강조하고, 정치사회환경도 강조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행복선언은 빈곤한 마음과 가난한 이들을 양산하는 사회환경을 극복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롭고 풍요로우며,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사회가 행복한 사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시는 행복선언, 서로 나누는 덕담, 그리고 저희 평화동 성당 사목자들이 드리는 세뱃돈이 사순시기를 준비하는 우리들에게 종자돈이 되길 바랍니다. 그 말씀들과 세뱃돈이 사순절을 거치며 잘 불어나서 부활 때에는 아주 흡족하고 자랑스럽게 예수님 앞에 봉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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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 행복학, 정치학

2010년 2월 14일 연중 제6주일 

예레미야서 17,5-8 / 코린토 1서 15,12.16-20 / 루카복음 6,17.20-26

이번 주일, 예수님께서 ‘행복과 불행’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 위대한 가르침 ‘지복선언’에 많고 많은 묵상과 해석들, 실천들이 존재해왔다. 어떤 이들은 영적 가르침으로 승화시켰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가르침이 지닌 정치적 함의나 도전을 거세하거나 축소시키는 시도를 해오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의 이 위대한 가르침을 단순히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나 ‘십계명’이 진화된 버전 등으로 간주한다(Sermons: Biblical Wisdom for Daily Living, William Morrow, New York: 2008). “~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십계명 식의 엄격한 가르침 시리즈가 아니라, 옳은 것을 행해서 얻는 보상과 축복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사람들은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등의 내용으로 봤을 때 이 선포가 ‘현세에는 치열하게 살뿐, 행복과 보상은 내세에서’라는 가르침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가르침도 예수님께서 의도하시는 바를 제대로 파악한 것은 아니다.  

“~하는 사람들아 너희가 행복하다”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엔 철저하게 현실적인 ‘존재론적 긴급성’이 담겨 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지금!,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지금!  

죽어 저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인 것이다. 본질적으로 내용의 절박성만큼 실현의 절박성도 강조되고 있는 선포이다. 그렇기에 이것은 정치적 선언이기도 하다. 사회복지나 적선이나 자선 수준으로 격하되고 좁혀질 내용이 아닌 것이다. 이 ‘지복선언’의 의미 논쟁에 관계없이 이 내용이 사회적 공공적 가치의 핵심임은 분명하다. 이것은 물질주의와 탐욕의 노예가 되어있는 이 사회에 대한 충분한 성찰과 도전이 되어준다.  

‘지복선언’이 가져온 대안적인 정치적 의미는 이렇다: 가난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부른다. 부자가 아니라.; 굶주림은 포식자들이 아닌 절제자들을 찾게 하고; 눈물은 위로자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배척과 증오는 예수님의 깊은 정신과 포용하는 넓은 가슴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탐욕과 폭력에 사로잡힌 이 세상에 전혀 다른 가치와 삶이 존재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함을 보여주셨다. 억압과 지배, 성공과 경쟁논리만 작동하는 사회에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전혀 다른 길 다른 질서를 세울 수 있음을, 또 그렇게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William Stringfellow가 지적하듯이 지상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자원과 물, 식량 등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충돌과 지배, 침략과 약탈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여만 한다(An Ethics for Christians and Other Aliens in a Strange World, Wipf and Stock Publishers, Eugene, Ore.: 2004). 가난과 굶주림과 눈물이 그치지 않는 구조악의 현실 말이다. 이런 현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위임하신 하느님 나라를 세우는 그 거룩한 목표와 책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혼란스럽게 한다.  

심란한 와중에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가야할 방향이 옳은 것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복음말씀을 잘 살펴보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명백하게 “하느님 나라”에 관한 것이고 그 ‘하느님 나라’는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현실에서 정말로 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곳‘을 의미한다(Preaching the Sermon on the Mount, David Fleer and David Bland, eds., Chalice Press, St. Louis: 2007).  

자신을 하느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숙명적으로 그런 세상의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끊임없이 ‘이중 정치학(dual politics)’을 두고 갈등하고 선택하고 성찰하는 싸움을 할 수밖에 없다.: 자선만을 말할 것인가 구조악도 직시할 것인가; 지금 여기를 말할 것인가, 내세를 말할 것인가; 개인적이고 기복주의적인 신앙에 머무를 것인가,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함께 할 것인가; 현실과 타협할 것인가, 박해와 어려움도 무릅쓰고 하느님의 길을 갈 것인가; 영적 차원의 행복만을 강조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문제들도 돌볼 것인가... 등등.  

오늘 첫 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가 자신이 체험해온 바 결론에 대해 말한다. 예언자로서 그는 당대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해왔다. 그로 인해 모욕과 능멸 등 갖은 시련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며 그런 사람은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가뭄이나 무더위 같은 고난에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고 말한다. ‘지복’과 ‘불행’을 가르는 기준이 여기에 있다.  

하느님께 의지하고 하느님 나라를 세워나가며 얻는 행복,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누리는 행복은 아무리 시련과 어려움이 있다 해도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인이 잡아야 할 가치, 중심은 세상의 정치학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정치학이다. 가난한 사람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지금 우는 사람들에게 지금 여기서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말하고 행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들의 물러설 수 없는 행복학, 정치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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