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규현 바오로 신부::또다른사색들
 >성찰 > 또다른사색들 

TOTAL ARTICLE : 460, TOTAL PAGE : 1 / 31
구분 묵상 |
묵상 : 환대와 하느님 나라- 7월 18일 연중제16주일
 문규현  | 2010·07·17 14:05 | HIT : 4,991 | VOTE : 404

환대와 하느님 나라

2010년 7월 18일 연중 제16주일 묵상 

지나가는 나그네와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 예전에는 이걸 잘 하는 집에는 덕이 쌓인다 하고 훌륭한 가풍을 지닌 가문으로 존경받았지요. 우리 자랄 적에는 부자들만 나그네 대접을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림인 곤궁한 집들도 자기들 먹을 밥을 맹물과 김치에라도 상 차려 내놓곤 했습니다.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도 이런 걸 참 잘하셨습니다. 저희 형제 신부들이 있는 본당에서는 늘 오가는 사람들 잘 챙겨 먹이는 일로 자기봉헌을 하셨습니다. 본인이 직접 그렇게 했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행하시는 걸 보며 자랐든, 여기 계신 분들 속에도 이런 좋은 추억을 가진 분들이 아직 많을 겁니다.  

오늘 성서 묵상은 ‘환대’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나그네 세 사람을 자기 집에 초대해 송아지도 잡고 먼지투성이 발도 씻겨주며 극진히 대접합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마리아와 마르타도 각자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예수님을 대접하느라 바쁩니다.  

사람을 내 마음 안에, 내 자리에 들이는 것을 기뻐하며 잘 대하는 것이 환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란 서로 경계심과 두려움 없이 어울리고 나누며 성장하는 공동체를 말합니다. 신앙인들이 이 지상에서 말과 행위로 열심히 하는 모든 것들은 환대의 영성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차별이나 편견, 배타나 배척 같은 못된 장벽들을 허물고, 배려와 어울림, 공존과 상생이 넘쳐나는 신앙공동체 사회공동체를 만드는 게 하느님 나라 운동입니다. 환대는 단순히 아름다운 덕행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핵심 영성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현실은 날이 갈수록 환대 영성을 저버리게 만듭니다. 낯선 사람은 무조건 경계대상입니다. 잘 아는 사람조차 때론 믿음 주기가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남을 환대했는데 보람은커녕 도리어 악재로 돌려받을 때도 있습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환대를 가장해서 남을 이용하고 사기 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씩 관계가 파탄 나고 신뢰가 무너지고 하면 점점 더 남에게 마음 열기가 쉽지 않아집니다. 더구나 오늘날 사회에는 불신과 적대감이 만연해서 그리스도인들의 환대 영성은 어찌 보면 설득력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대’의 그리스어 어원을 보면 손님과 주인 중 어느 한 쪽만이 아닌 둘의 의미가 다 들어있습니다. 환대란 손님이 되는 것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며, 손님을 초대하고 대접하는 주인의 역할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손님이 주인이고 주인이 손님입니다. 손님은 초대받음을 통해 여러모로 만족을 얻습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주인에게 감사하며 복을 빌어줍니다. 동네방네 주인의 덕행을 알려 더 큰 존경과 호감을 주인에게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의 손님들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잘하면 복이 내게로 돌아온다는 말이 맞습니다. 주인은 주는 입장에서 받는 입장이 됩니다.  

마리아의 손님 접대 방식은 마르타와 다릅니다. 마리아는 손님인 예수님께서 좋아하시고 자신이 원하고 보여주고 싶은 방식으로 손님 접대를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심히 듣는 것입니다. 마르타도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왠지 부당하게 자신만 일하고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평을 쏟아놓기도 합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봉사활동에 참가한 사람들이 흔히 “도와주러 왔는데 오히려 제가 많이 배우고 갑니다.” 하는 말들을 하지요. 남을 돕고 대접하고 나누는 가운데 정말로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스도 영성의 핵심에 사랑과 연민이 있습니다. 사랑이나 연민의 구체적인 모습은 남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그것이 환대입니다. 다른 이를 환영하는 것이지요. 내 삶 속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환영하고 다른 이들의 삶 속으로 내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허물고, 좁은 인간관계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랑과 연민의 대상을 넓혀나가는 것이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환대 영성에는 희생의식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고단함과 외로움은 있을지언정, 이것은 하느님 나라 운동이고, 인간이 아닌 하느님의 인정만이 진실하다는 것에 대한 확신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환대 영성이 뿌리내린다 함은 신앙과 신념이 튼튼해지고, 삶이 건강해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선 우리 부족한 인간을 잘 대접하러 오셨다가 도리어 핍박받고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진정으로 원하신 사랑과 연민은 엄청난 힘을 발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 배척하고 외면하는 이 세상을 일치와 넓은 품으로 잘 대접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찌들은 이 세상을 따뜻함과 나눔의 손길로 품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도 환대 영성으로 우리 주위를 잘 품을 수 있기 바랍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환대 영성

2010년 7월 18일 연중 제16주일

창세기 18,1-10ㄴ/콜로새서 1,24-28/루카복음 10,38-42

“점심 같이 합시다.” “차 한 잔 해. 자, 어서 오라고.” “그렇게 혼자 일 열심히 하는 척 하지 말고 같이 어울립시다.” 이렇게 일상에선 공동체 정신과 동반자 의식, 더불어 살아감을 앞세운 듯한 이런 말들이 무수히 오고간다. 우린 초대자가 될 수도 있고 초대받을 수도 있다. 이런 초대들은 유연하고 친밀한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나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더러 사려 깊지 않은 ‘습관적’ 초대들은 바쁜 스케줄을 더 부산하게 하거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늘 첫 독서는 아브라함이 길 가던 나그네 세 사람을 집으로 들여 환대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 그와는 달리 복음서에서는 마르타가 손님인 예수님 접대준비에 지쳐 불평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과연 얼마나 많은 현대의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극진한 환대를 베풀고 있을까? 많은 이들이 마르타처럼 환대를 부담스럽고 불편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이란 사실 환대의 정신과 실행에 다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을 받아들이고 기뻐하고 대접하는 것, 그분을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시도록 허락하는 것, 마리아처럼 그분의 발치에서 그분의 가르침을 듣는 것이 바로 그러한 환대의 영성이다.  

환대는 아름다운 삶의 예술이다. 영적으로나 신앙생활에서 아주 핵심적인 요소이다.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서로 생존하고 공존할 수 있는 공동체 정신이다. 예전에는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일이 그 집안 가풍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공동체가 기아나 고난을 이겨나가는 방편이기도 했다. 그게 구원의 손길이었고 섭리였다. 그러나 오늘 날에는 아쉽게도 ‘환대라는 예술’은 의례적인 것이나 형편 되면 할 수 있는 선택 사항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환대의 중요성과 환대의 기쁨은 이제 우리 생활 속에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 

환대라는 단어 hospitality 어원은 그리스어 xenos이다. 이 단어에는 '낯선 사람stranger'라는 뜻 뿐만 아니라 ‘손님guest'와 ’주인host'라는 뜻도 들어 있다. xenos에서 philoxenia가 왔다. philoxenia는 ‘낯선 이, 손님을 좋아하는 사람’, 또는 손님을 대접하는 주인 됨을 좋아함‘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주인이라는 말에는 손님이 들어있고, 손님에는 주인이라는 말이 들어있는 것이다. 각각의 역할에는 상반되는 듯한 속성과 역할이 잠재되어 서로 보완하고 발전하며 완전함을 이룬다.  

Christine Pohl은 자신의 저서에서 성서에 나오는 환대의 정신을 우리 시대에도 되살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Christine Pohl, Making Room: Recovering Hospitality As A Christian hospitality, Wm B. Eerdmans, Grand Rapids, Mich.: 1999).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다. 이집트에서 탈출한 난민이기도 했고, 머무르고 거주할 곳을 찾아 길 위에 있었던 나그네였고 이주민이었다. 사도 바오로는 주로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 선포를 하였으며, 그들에 대한 어떤 편견도 거부도 없이 모두 예수님의 공동체로 품었다. 그리고 그 나그네들, 이주민들, 이방인들은 하느님과 예수님 안에 신앙의 둥지를 틀었다.  

나아가 환대 정신에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 차별장벽을 없애는 것이라고 Pohl은 주장한다. 하류층이라고 분류되는 사람들,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사회 공동체 안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수용하고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인간들 속으로 들어오셔서 구원역사를 펼치셨듯이 말이다.  

예수님은 마르타와 마리아에게 손님으로 초대받아 가셨다. 그러나 그곳에서 예수님은 주인이 되셨으니, 마리아는 예수님 발치에서 가르침을 들었으며 마르타는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분주했다. 마찬가지로 첫 독서에서 아브라함도 지나가던 세 사람의 나그네를 집으로 모셔 환대하였다. 아브라함은 스스로를 ‘종’으로 부르며 요리를 차려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그러자 나그네들은 이제 아브라함의 환대에 보답하며 그를 복된 미래로 초대한다. 그들은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고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예수님은 지상에 오신 손님이고, 지상의 인간들을 하느님 구원 공동체로 초대하는 주인이시다. 손님이요 주인으로서 예수님은 자신이 인간을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셨다. 예수님과 마리아 마르타 이야기, 아브라함과 세 나그네 이야기는 오늘날의 신앙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우리 시대의 나그네들, 우리 주변의 손님들은 누구인가?  

사실 우리 각자가 일주일 동안 만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몇 안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환대가 자신이 만나고 만날 수 있는 소수만을 위한 그 때 그 때의 의무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환대는 그리스도의 지체인 모든 이들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행하는 환대는 공동체 전체에 큰 의미를 부여해준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라.

 

 

 

 

 

  
460 묵상   힘들어도 기뻐하라!- 7월 8일 연중 제 14주일  문규현 07·07·06
459 묵상   힘내시라, 겨자씨님들아-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문규현 12·06·16
458 묵상   희망이 있는 근거들-4월 27일 부활 제6주일  문규현 08·04·24
457 묵상   후쿠시마 이후 시대-6월 5일 주님 승천 대축일  문규현 11·06·04
456 묵상   회심한 탕자와 유신 탕자들-9월 15일 연중 제24주일 묵상  문규현 13·09·14
묵상   환대와 하느님 나라- 7월 18일 연중제16주일  문규현 10·07·17
454 묵상   헛것 보는 사람들-4월 22일 부활 제3주일  문규현 12·04·22
453 묵상   행복한 설날 되십시오-2월 14일 연중 제6주일  문규현 10·02·13
452 묵상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2월 10일 연중 제5주일, 설날  문규현 13·02·08
451 묵상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1월 6일 주일 묵상  문규현 13·01·05
450 묵상   핵 때문에 모든 것을 잃는 사람들-6월 19일 삼위일체대축일  문규현 11·06·18
449 묵상   한 목자 아래 다양한 양들-5월 3일 부활제4주일  문규현 09·05·02
448 묵상   하느님의 메신저들-3월 22일 사순 제4주일  문규현 09·03·21
447 묵상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10월 10일 연중제28주일  문규현 10·10·09
446 묵상   하느님의 꿈을 뵙다-1월 3일 주님공현대축일  문규현 10·01·02
1234567891031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GGAMBO

 



Copyrights(c) 2003 paulmun.or.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