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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10월 10일 연중제28주일
 문규현  | 2010·10·09 00:57 | HIT : 4,924 | VOTE :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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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2010년 10월 10일 연중 제28주일 묵상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외친 말입니다.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요?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자신이 쓰는 말과 행위는 자신의 가치관, 속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지은 죄를 매번 고백합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말이나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모순되고 거짓되게 느껴집니다. 반면 생각과 말과 행위가 일치되더라도, 고정관념을 반복하는 아집이나 편견은 아닌가 성찰해야 합니다. 생각과 말과 행위가 번번이 흔들리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이 줏대 있는 사람인가 돌아봐야 합니다.  

지난주 일요일 오후에 우리 본당 40여 분이 모여서 생태환경교육을 가졌습니다. 그 순서 중에 ‘검증되지 않은 가정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런 게 있었어요. 다시 말해, 의심하지 않고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한 채 사실이나 진실로 믿으며 행동하는 그런 가치관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날 나왔던 게 ‘여자는 미모, 남자는 능력’이란 게 있었습니다. 과연 진실일까요? 또 한 분은 자기 집에 묵었던 영국인 얘기를 해주며 ‘선진국 사람은 다 잘 먹고 잘 산다.’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말해주셨습니다. 그 영국인은 한 겨울에도 수면양말에 파카 입고 잔답니다. 난방을 거의 안 해 난방 요금이 거의 제로가 나온답니다. 어릴 때부터 습관으로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랍니다.  

일본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깔보며 불렀던 말이 있지요. ‘조센징’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흑인을 부를 때 ‘깜둥이’라고 많이 멸시합니다. 동남아 사람들도 눈 아래 깔며 한 수 접고 들어갑니다.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라고,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그러니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백인, 서양 사람들, 잘 사는 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함부로 못하고 안 합니다. 이런 것도 ‘검증하지 않은 가정들’입니다.  

성경시대에도 그랬습니다. 과연 사실이고 진실일까?, 이렇게 의문하지 않은 채 너무도 당연하게 이스라엘만이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며, 다른 민족들은 모두 열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은 오직 이스라엘만을 예뻐하고 구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거나 병이 있는 사람들, 여자들은 죄 많고 벌 받은 사람들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들에 나오는 사마리아인이나 나병 환자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겐 하찮고 상대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깔보고 업신여기고 있을 때,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 역시 나를 깔보고 업신여기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차별 없이 누구든 포용하고 품어주는 말씀입니다. 사랑과 자비로 기 살리고, 힘주고, 성장하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참된 믿음이란 하느님의 말씀을 나의 고정관념과 틀에서 해방시켜, 더욱 힘차게 다른 존재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간의 사제생활 속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기억 속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말을 올해 명동성당에서 들었습니다. 아마 교회 역사에서도 하나의 상징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5월, 명동성당 계단에서 신부님들이 2주일 여 동안 4대강 사업 중단을 염원하는 노숙단식기도를 가졌습니다. 명동성당 사목회 임원들이라는 사람들이 신부님들께 “영업방해 말고 당신들 본당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신부님들이 기도하러 명동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들은 막았습니다.  

사제 생활 수십 년에 듣도 보도 못한 안하무인과 모욕적 행태였습니다. 그들이 내뱉은 단어 “영업방해”라는 말은 두고두고 묵상거리가 되었습니다. 천주교 주교단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어도 명동성당 사람들에겐 “영업”이 더 중요했습니다. “영업”이란 말 속에 그들의 가치관, 신앙관, 속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영업”이 사제와 사제, 사제와 신도 사이의 기본적 존중과 예의마저 짓밟고 그 위에 올라섰습니다.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자기들만의 고고한 성채를 쌓으며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아름다움을 저버렸습니다. “영업”이 믿음보다 신앙보다 우월하고 소중하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감옥입니다.  

하느님께선, 예수님께선 인간이 만든 생각의 감옥, 행동의 감옥하곤 전혀 상관없는 잣대를 갖고 계셨습니다. 오직 믿음만을 보셨습니다. 차별도 계급도 편견도 없으셨습니다.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위아래를 만들고 기죽이고 상처 주는 모든 고통의 틀, 인간이 만든 장벽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런 세상이 되도록 줄기차게 노력하는 게 교회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교회는 그저 친목모임에 불과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고 사도 바오로는 선포했습니다. 우리 자신은 어떠한가, 과연 하느님 말씀을 자신이 만든 틀과 한계에 가둬놓고, 왜소하고 초라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성찰해봐야겠습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

2010년 10월 10일 연중 제28주일

            열왕기하5,14-17/티모테오 2서2,8-13/루카복음17,11-19 

우리가 쓰는 언어들, 개념들은 우리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대변한다. 그래서 정치 사회적으로 편견이나 차별의식을 담지 않은 용어들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다 포용적이고 중립적인 용어의 사용은 가치관의 변화와 발전을 반영한다. 예건데 ‘검둥이black’나 ‘니그로negro'’라며 흑인들을 업신여기던 말은 ‘아프로-아메리칸African-Americans', ‘인디언Indian'은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과 같은 보다 중립적인 용어로 대체되고 있다. 또 ‘fire fighter'는 ‘fireman'으로, ‘postal carrier’는 ‘postman'으로 바꿔가고 있다. 또 남성과 동시에 인간 전체를 대표하는 말로 사용되는 ‘man’을 일반적 사람들을 지칭할 때는 ‘people’을 사용한다든가 한다.

이런 노력들은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는 편견과 차별 장벽을 넘어서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언어 또한 시대와 역사를 거치면서 생성과 진화, 소멸을 거듭하기 마련이다. 같은 언어여도 시대적 배경이나 사용하는 사람, 집단, 문화, 지역 등등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 성경은 고대근동의 역사 문화를 배경으로 한 언어로 쓰였기에 때로 오늘날 신앙인들의 시선으로는 수용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성경 시대의 이스라엘과 유대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하느님이 선택한 백성, 즉 선민이라 여겼다. 그래서 오늘 첫 독서에 나오는 시리아 사람인 나아만 같은 사람들을 하느님 눈 밖에 난 사람으로 간주하곤 했다. 그가 외국인 즉 이방인일 뿐 아니라 나병환자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람들은 나병을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벌하시는 방법의 하나로 생각했다. 나아만은 시리아의 강에서 죄를 씻는 의식을 치르지 않고 이스라엘의 요르단 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는 정결의식을 치른다. 정치적으로도 관습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맞지 않는 행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만들어온 제약과 틀에 개의치 않으시고 구원의 섭리를 펼치신다.

엘리샤는 이렇게 하느님의 뜻과 의지를 나아만을 통해 분명히 드러내보였다. 그 구원의 섭리는 이제 예수님을 통해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 사이를 가로막는 어떤 인위적 장벽들도 허용하지 않으셨다. 죄인과 이방인들과의 접촉은 어떤 것이든 부정하고 탄 사람으로 여겨지던 시대이다. 그런데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을 지나가시고 그에 더해 나병환자까지 만나셨다. 나병환자도 한 명이 아니라 열 사람!이나 된다. 그들 병은 사제들에게 몸을 보이러 가는 동안 이미 깨끗해졌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단 한 사람, 이스라엘 사람들이 업신여기고 멀리하는 이방인 사마리아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감사인사를 올리는 상징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방인의 믿음과 감사행위를 높이 사셨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죄인’이라고, 이웃을 ‘열등한 집단’이라고 낙인찍지 않으셨다. 당대 사람들의 차별과 편견 가득한 언어들을 용납하거나 구원 대상을 특정인들로 한정짓지 않으셨다. 통합과 일치가 아닌 분열과 분리를 불러오는 언어들을 뛰어넘으셨고, 차별과 편견의 틀을 거부하셨다. 도리어 그것들을 초월하고 새로운 일치와 공생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 예수님의 소명이셨다. 그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오직 사람들의 믿음만을 보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행위를 통해 그릇된 말과 행위로 상처받고 아파하는 영혼들을 위로하셨다. 사도 바오로는 이를 두고 자신은 감옥에 갇혀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다.”고 말하였다.  

하느님 말씀을 자기 이익을 지키는데 한정짓는 것이 아닌, 모두의 하느님 나라를 위해 해방시키고 자유롭고 공동선이 되게 해야 한다. 신앙인들은 그 길에 있어야 한다. 그 길에 있다 감옥에 갇힌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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