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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 힘내시라, 겨자씨님들아-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문규현  | 2012·06·16 00:46 | HIT : 3,275 | VOTE : 344

                                                         오늘 법정에서.                              

힘내시라, 겨자씨님들아

2012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일

            에제키엘17,22-24/코린토 2서5,6-10/마르코복음4,26-34  

“스님, 살아서 싸웁시다.”  

밀양 초고압송전탑 건설 반대운동을 하다 얼마 전에 다시 병원에 입원한 태고종 법성스님에게 이렇게 간곡하게 당부했습니다. 눈물 많은 스님은 어김없이 전화기를 붙잡고 또 웁니다. 

“이제 내 스스로 목숨을 내놓겠다. 수없는 고민을 해서 내린 결정이다. 종교인으로서 더 이상 더럽고 추하고 싶지 않다.”

스님은 이런 ‘유언’과 ‘최후통첩’을 한전 쪽에 보냈답니다. 스님 혼자 있게 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며 주민들이 스님 곁을 24시간 지키고 있습니다. 밀양 할매들은 이 더운 날에도 산 위 움막에서 지내며 한전이 들어오면 다 죽어버리겠다고 한다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밀양의 눈물’을 뒤로 하고, 제주에서는 이영찬 신부님 구속적부심이 기각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들으며 강정에 왔습니다. 오늘(15일) 제 선고공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받았습니다. 인생 세 번 째로 받은 실형입니다.  

마침 오늘은 예수성심대축일이자 사제성화의 날이었습니다. 인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한 사랑과 애틋함을 기리고, 사제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 선포의 직무를 더욱 훌륭히 수행하면서 완덕으로 나아가고자 다짐하는 날입니다. 이 거룩하고 특별한 날, 저에게 제주법정에 설 수 있는 큰 은총과 축복을 허락하신 하느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죄 판결문을 듣고 있자니 마치 사제 정화예식을 치르는 듯, 새로이 기름부음을 받는 듯, 도리어 신선하고 경건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6.15 남북공동선언 12주년이기도 했습니다.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방북했던 일로 두 번이나 투옥되었던 제 개인사를 생각하면, 이곳 ‘평화의 섬’ 제주에서 전쟁기지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단죄되는 것도 뜻 깊습니다.  

제가 재판 받은 뒤 오후에는 해군이 군 관사용 아파트를 짓겠다며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주민들이 막았습니다. 설명회가 불발 되려고 하니까 해군은 ‘설명 녹음기’를 틀더군요.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봅니다. 결국 해군들은 우왕좌왕 돌아갔는데, 텅 빈 무대를 배경으로 강동균 마을회장이 노래 한 곡 걸쭉하게 뽑았습니다. 해군은 주민설명회를 ‘성황리에 개최’했다고 보도 자료를 냈어요. 웃깁니다. 팍팍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웃을 일은 많습니다. 이어진 시간, 저녁에는 활동가 한명이 결국 구속 확정됐습니다. 휴가로 생각하고 모처럼 잘 쉬었다 오길 바랍니다.  

저는 이제 곧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갑니다. 함께 걷고, 함께 웃고, 함께 살자! ‘쌍용차 문제 해결을 염원하는 희망과 연대의 날’입니다. 겨자씨들이 뭉쳐서 거대한 힘을 보여주는 날입니다. 이번 주일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까?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땅에 뿌릴 때에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도 작다. 그러나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큰 가지들을 뻗어, 하늘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겨자씨는 좁쌀보다 작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아주 작은 것들을 지칭할 때는 통칭해서 ‘겨자씨만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씨앗 속에 생명을 피어내는 힘과 신비가 들어있고, 이 겨자씨들이 자라나면 유채꽃마냥 노란꽃밭이 무성합니다. 실한 꽃가지에는 새들도 날아와 앉습니다. 그 작디작은 겨자씨 안에 사랑과 열정, 꿈과 창조력이 꿈틀댑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생명력 가득한 겨자씨입니다. 나도 남도 헐하고 만만하게 대접해서는 안 되는, 귀하고 존엄한 존재입니다.  

예수님께선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으면,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는 싹이 터서 자라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되는지 모른다.며 하느님 나라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고만고만하고, 평범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내재되어 있습니다. 겨자씨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생명의 아우성을 뿜어대면 그 자체로 하느님 나라가 자라는 것입니다. 희망과 연대가 바로 겨자씨들이 만들어내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여기저기서 죽을힘을 다해 싸우고 버티고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힘내라”는 응원과 격려, 관심이 절실합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건 다른 이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우리 각자가 힘내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내보내지 못하는 겨자씨는 말라죽습니다. 혼자 피어있는 겨자꽃은 외롭고 딱합니다.  

밀양에서, 강정에서, 쌍차에서, 그리고 외로운 곳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또 다시 희생되었다는 아픈 소식을 듣지 않으려면, 다른 겨자씨들이 자신의 힘을 믿고 힘을 내야 합니다. 남의 주머니를 털고 또 털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드는 탐욕꾼들의 그물에 이 시대 겨자씨들이 걸려들지 않을 생존비법은, 그래도 연대하고 그래도 희망하는 것입니다. 그것 외엔 달리 비책이 없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모든 역사는 겨자씨들이 영차영차 힘을 쓸 때, 진실이 힘을 얻고 어둠을 돌파하면서 성큼 앞으로 전진해왔습니다. 쌍차도 강정도 밀양도 다, 겨자씨들 힘 덕분에 이만큼 오고, 이만큼 이기고 있습니다. 겨자씨들은 자신에게 무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것들’이 지닌 힘에 대해 말씀하시길 좋아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겨자씨 가르침은 또 있습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산을 들어 옮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복음 17,20) 

     - 문규현 신부 드림  

밀양 송전탑 공사 업체, 폭행 피해 스님 '2차 가해' 논란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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